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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망

섬망 환자와 감정적 거리 두기 – 상처 주지 않으면서 버티는 방법

by happy0708 2025. 7. 20.

서론: “내 가족이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지?”

섬망 환자와 감정적 거리 두기 – 상처 주지 않으면서 버티는 방법

섬망 상태의 환자는 가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무심코 던진다.

“너 때문에 내가 여기 갇혔어”, “넌 내 자식 아니야”, “꺼져” 같은 말은 평소의 인격이나 관계와 전혀 다른 모습이기에, 보호자는 충격을 받는다. 특히 오랜 시간 정서적 유대를 쌓아온 가족일수록 배신감, 분노, 자괴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이런 감정이 누적되면 간병 자체가 버거워지고, 때로는 정서적 이탈이나 죄책감까지 유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섬망 상태에서의 말과 행동은 환자의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왜곡된 상태에서 나오는 반응일 뿐, 그 안에 있는 진짜 ‘그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1️⃣ 감정적 거리 두기의 첫 걸음 – 환자의 말은 뇌의 소리일 뿐이다

섬망 상태의 환자가 내뱉는 말은 뇌의 혼란이 만들어낸 신호일 뿐이다.

이 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보호자는 그 말을 ‘의도된 공격’으로 오해하고 감정 상처를 입게 된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예를 들어, 환자가 “넌 날 괴롭히려고 여기 데려왔지”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실제로 ‘자녀가 나를 가뒀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뇌가 현재 상황을 위협으로 해석해 방어하는 방식일 뿐이다.

 

 

이처럼 섬망 환자의 발언은 현실이 아니라 인지 오류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감정적 거리 두기의 시작이다.

실제로 많은 정신과 전문의는 보호자에게 “그건 ○○님의 말이 아니라, 뇌가 하는 말입니다”라고 표현한다.

이 문장을 마음속에 새기면, 환자의 언행에 휘둘리기보다 한 발짝 감정적으로 떨어져서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2️⃣ 감정적 반응을 줄이는 훈련 –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기술

섬망 환자의 말이나 행동이 감정적으로 자극적일수록, 보호자의 뇌 역시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감정을 실시간으로 반응하면, 서로의 긴장이 더 높아지면서 상호 스트레스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감정 안전 장치’를 일상 속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즉각 반응하지 않기: 충격적인 말을 들어도, 바로 대응하지 않고 5초간 침묵 후 호흡하는 습관을 들인다.

‘나’를 지켜주는 문장 만들기:

예: “이건 엄마가 아니라 섬망 상태의 뇌가 하는 말이야.”

감정을 옮기지 않기: 가족 간 돌봄 역할을 분담할 때, 감정까지 전가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오늘은 말이 너무 심했어”라는 표현보다는 “오늘은 좀 많이 혼란스러워 하셨어”라고 공유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훈련은 단기간에 완성되진 않지만, 반복할수록 내가 환자와 분리된 개별 존재임을 인식하는 힘이 길러진다. 이는 감정 소진을 막는 핵심 방어기제가 된다.

 

3️⃣ 상처받은 감정을 무시하지 말고, 말로 표현하자

감정적 거리 두기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외부로 건강하게 빼내는 과정이다.

많은 보호자들이 ‘참는 것’이 돌봄이라고 생각하지만, 억누른 감정은 반드시 신체 증상, 우울감, 분노 폭발 등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감정은 반드시 인정하고 표현해야 한다.

 

 

혼잣말로라도 “나는 지금 힘들다”고 말해보는 것

일기를 써서 오늘 있었던 환자의 말과 그에 대한 내 감정을 적는 것

친한 가족, 친구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나누는 것

지역 간병자 모임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짧은 글을 올리는 것

이런 표현 행위는 감정을 해소시키는 동시에, “나만 이런 경험을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적 안정감을 얻게 해준다.

감정은 숨기거나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야 관리할 수 있다.

 

 

4️⃣ 나의 존엄도 함께 지켜야 섬망 간병이 끝까지 간다

가족 간병은 사랑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특히 섬망 환자의 간병은 단기간이 아니라 수개월, 길게는 수년에 걸쳐 반복될 수 있는 고된 여정이다.

이 여정을 버티기 위해서는 환자의 존엄만큼 보호자의 존엄도 함께 지켜져야 한다.

보호자는 때때로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느끼고,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 같아 괴로워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나의 존엄과 생존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스스로에게 “나는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내가 없어도 세상은 괜찮게 굴러간다”는 생각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은 자유가 아닌 죄책감 없는 인정이다.

감정을 지키는 것은 환자를 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를 가장 오래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